무자일주
우리 할머니도 무자일주였다.
할머니가 살아 생전 무수히 반복해서 말하던 이야기들.
'할매, 그 얘긴 벌써 오십번도 더 들었어.'
지겹게 들은, 수십번도 더 들은,
그 삶의 여정들.
그 울퉁불퉁한 길을 나는 지금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.
사주도 DNA가 있나보다.
물론 단식이고, 울 할머니때는 전쟁을 겪은 세대라 더 많은 고통을 감내하셨고,
지금의 나는 비교할 바가 아닐지도 모르나,
내가 나이가 들어갈수록
순간순간의 상황에, 가끔씩 할머니가 떠오르곤 한다.
무자일주.
무자, 자식이 없거나 하나. 또는 타자양육. 성장하면 사이가 멀어질 수 있다.
우리 할머니는 외동아들 하나, 그리고 조카를 같이 키우셨다.
둘다 훌륭하게 장성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심.
결혼하고는 말도 못할 만큼 고부갈등이 심해 늘 전쟁이었다.
나는 지금 타자양육중.
반려동물을 내새끼처럼 키우고 있다.ㅋ
아기를 키워보고싶은 때도 있었으나, 남편에 대한 마음의 거리감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
언제든 내가 원할 때 떠날 수 있게 족쇄는 만들지 않기로 최근에 결정했다.
백두노랑남편.
나이가 많은 남편과 결혼하거나 조선시대에는 첩의 팔자라고도 했다.
(요즘은 한참 연하랑 결혼하기도^^)
할머닌 나이가 많은 남편과 늘 싸우셨는데
나도 지금 그러고 있네...ㅎ
나이 많은 남편에게서 안정감을 느끼고 살고 싶었는데
그 사람이 나로 인해 젊어지는 게 아니라
내가 같이 그를 따라 몸도 마음도 늙어버리고 있다.
그러나 할머니는 한량백두노랑 할아버지를 각고의 노력과 인맥으로 사업체 사장까지 만들어내셨다.
(아마 사주내 관이 뚜렷해서 아들과 남편을 잘 키워내신 듯, 하지만 지지 자오충으로 남편과의
사이가 평생 좋지 않았다.)
돈
할머니는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돈에 집착하셨는데.
어린 나는 궁금했다. 도대체 왜 저러실까.
그 집착이 소비가 아니라 모으는데 집중되었다.
엄청난 짠순이.. 옛날분들은 어렵게 살아 그렇다고도 하지만..
그리고
음식에 대한 집착이 장난이 아니라 엄청난 대식가셨고,
그런데 매일 산을 타셔 살은 절대 안 찌심.
그러나
구십이 넘도록 육체가 멀쩡하셔서
온 가족을 힘들게 하고 떠나가셨다.
(정신은 죽었는데 육체만 너무 건강한 것도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.)
시간이 지나고,
나는 여러가지를 알 것 같았다.
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예전의 할머니가 이해되었다.
돈에, 음식에, 종교에, 아들에 왜 그리 집착하셨는지.
할머니도 버티고 계셨던 것이다.
외로우셨구나.
그렇게 강하고 기센 할머니도 기댈 곳이 필요하셨던 것이다.
그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것은
내가 어느샌가 할머니의 자취를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겠지.